라이프로그


[책]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 하지현




p23 자기애는 본인이 완벽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매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어른이 된다. 그러나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매번 직면하고 아파할 필요는 없다. 더욱 건강한 것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26 이런 불편함을 견디는 능력이 사실 마음의 체력에 있어서 맷집에 해당한다. 맷집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마음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함므로써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p27 애매한 상황이 지속됐을 때 불안해져서 성급한 결정을 해버린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결정을 한 것을 후회하기 쉽다. 이렇게 쉽게 결정하고 후회를 하는 것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어떤 결정이 자신에게 좋은지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꽤 많은 일은 '시간이 자연스럽게 해결'해 준다.

p35 나와 특별한 이해관계나 갈등이 없는 남이 나를 미워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내게 능력이 있다, 내가 뭔가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것을 갖고 있다는 반증으로 볼 수도 있다. 부러워하는 마음이 미워하게 만들고 네가 뭔데 저런 걸 가져? 라는 시기심이 발동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자신을 미워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기보다 그것을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훨씬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p67 이렇게 보면 작은 사치와 셀프 기프팅, 그리고 길티 플레저는 지친 뇌와 마음을 위로하고, 꽉 차오른 긴장을 풀어주는 소중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너무 죄의식을 느끼고 후회하고 '의지박약아' '쓸모없는 데 돈 쓰는 인간'으로 자책하지 말 일이다.

p75 감정과 인지 사이의 부조화가 있을 때 감정이 괴로운 것을 없애기 위해 차라리 인지를 변화시켜서 감정을 편하게 만드는 심리적 기제를 인지부조화로 설명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일부 청년들이 '나는 행복하다' '만족한다' 고 여기는 것은 이런 인지부조화의 결과는 아닐까.

p87 본래 우리는 약간은 자뻑 모드로 살아간다. 이런 나 보호막의 역할을 한다. 주변의 비판이 자아에 침투해 비수를 꽂지 못하게 한다. 난 잘해내고 있어 라는 마음이 보호막이 된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일수록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긍정적 착각을 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를 긍정적 착각 이라고 한다. 왜곡된 행복감이다. 정상적 조건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실제보다 낙관적으로 앞날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약간 우울한 상황이라고 느끼고 있을 때가 사실은 자신의 실제 객관적 현실에 가장 근접한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닥을 쳤다가 올라와 회복하기까지 상당한 기간 동안 자신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p111 정보 과잉이 도리어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선택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한다. 하지만 거기에 들이는 노력이 어느 선을 넘어서면 선택하는 과정 자체가 비용이 된다. 선택하는 데 고민이라는 비용이 많이 들수록 그걸 더한 만큼의 만족도를 요구하게 되고, 이것이 만족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은연중에 이렇게 오래 고민해서 찾은 것인데 이것밖에 안 돼? 라는 생각이 든다. 고민한 만큼 고려해야 할 요인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러니 실망할 가능성도 비례해서 높아진다. 아는만큼 실망하는 셈이다.

p113 이렇게 주체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개인의 관점에서는 좋은 면이다. 그러나 선택해야 할 상황이 불편할 정도로 많아지고 이것이 에너지 소모로 이어지면서, 실제로 제대로 신경 써서 선택해야 할 상황이 왔을 때는 거꾸로 심사숙고 하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선택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염증이 생겨버릴 수도 있다. 선택의 자유가 덫이 되어버린 것이다. 독일의 심리학자 바스 카스트는 이런 상황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던 속박의 상황에서, 끊임없이 결정해야 하는 속박의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p120 외로움과 우울증은 접근이냐 후퇴냐의 결정을 용이하게 해준다. 외로움이 유전자에 각인된 하나의 경보시스템으로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라면, 우울증은 타인에게 접근해서 정신적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를 제어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분석하는 데 집중하는 식의 사회 적응에 필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울증뿐이라면 무기력해질 뿐이겠지만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상황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상적인 반응의 하나다. 쿨하다가 너무 멀어져서 얼어 죽을 수 있으니 사람들 사이로 다시 다가가라는 일종의 경보장치가 울리는 것이 바로 외로움인 것이다. 그러니 외로움이 느껴진다면 그것을 우울증의 전조 증상으로 여기기 보다는 너무 멀리 왔으니 다시 무리 근처로 가라는 생존 본능의 경고로 인식하는 것이 맞다.

p156 게임 자체가 중독성이 있다기보다 사회가 재미없어서 그냥 거기에 머무르는 경향이 더 크다는 것이 문제인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다.
아이를 위해 정작 필요한 것은 게임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아 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현실에서 즐길 수 있는 것,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현실 세계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현실을 재미있게 느끼도록 해주려면, 현실에서 튕겨나가게 만든 문제를 찾아내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p196 사람들은 트라우마라고 인식한 사건을 어떻게든 지우고 싶어한다.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최면으로라도 사건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없애고 싶어한다. 아니면 타임머신을 타고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 하거나, 완전히 새로 복구되어야만 치료가 종결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런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절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치료 목표가 비현실적이며, 잘못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면서 몇 번의 불가피한 사건들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내 노력과 별개로 몇 년에 한 번 오는 태풍에 작물을 다 날려버릴수 있듯이 말이다. 스스로를 있을 수 없는 비극의 주인공이라고 여기게 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세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보다, 있을 수 있는 사건이 벌어졌을 뿐이고, 이 또한 내 인생의 일부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사건으로 인한 아픔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사건의 존재를 완전히 지우거나 원점으로 돌아가려는 헛된 희망을 품어서는 안 된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보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나는 내가 받은 트라우마보다 강한 존재다' 라는 마음이다.
오랜 편안한 생활로 마음의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낮은 수준의 아픔을 트라우마로 인식했다. 이 트라우마를 내가 견딜만한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소화하고 나면 나는 이전보다 더 강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그 다음부터는 그 정도의 사건이나 그보다 조금 강한 정도의 문제가 내게 벌어진다 해도 대범하게 넘어갈 수 있고, 그런 사건을 겪는다 해도 나라는 존재 전체가 흔들리거나 부서져 버릴지 모른다는 존재의 붕괴 불안까지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새로운 정상이다.

p198 만일 진짜 무의식이 억압되어 의식 세계의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라면 앞의 사람은 원칙적으로 의식에서 기억을 해낼 수 없어야 한다. 오직 오랜 기간의 정신 치료를 통해서 억제된 것이 서서히 솟아오르다가 어느 순간 그걸 기억해내면서 그것이 의식 세계의 한 부분으로 재편되고, 그 결과 부득불 무의식적 억제를 하느라 사용하던 정신 에너지가 줄어들면서 훨씬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p198 심리학이 대중화되면서 삶의 문제를 성찰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정하고 또 그 방면에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점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이나 운명에 책임을 돌리는 것에서는 벗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이를 심리화의 문제라고 칭할 수 있다. 한 개인의 현재 정신 상태를 심리 용어로 모두 치환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문제도 있다. 심리화의 우를 범하는 이들은 원인을 과거에서 찾는다. 이미 지나버린 상황이기에 돌이키기 어려운 과거에서 현재 상태의 원인을 찾아 독박을 씌운다. 그 결과 현재 상황에 대해 그러니 이럴 수 밖에 없지라며 합리화를 하게 된다.

p202 이것이 심리화의 첫번째 부작용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과거 불행의 원인 제공자를 탓하는 감정을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결국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우연한 불행들을 흔치 않은 비극으로 발전시키고 만다. 두번째 문제는 정상적 삶의 문제를 특수한 증상으로 치환한다는 것이다. 삶의 문제를 불안, 우울, 산만함 등으로 증상화하면서 이 증상만 해결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어 완벽한 존재로 거듭날 것이라 믿는다.
삶의 어려움,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인생의 도전과제를 증상과 질환으로 만들어 의료화하려 하고, 심리화한다.

p204 현대사회에서 내면의 성찰은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꼭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오직 심리로만 풀어서는 안 된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옷이 없듯이 심리화의 잣대를 들이대면 거기 걸려들지 않을 문제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한번 심리화의 덫에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어렵다.

p205 우리는 살면서 힘에 부치고 불편한 면을 불안과 우울이라는 증상으로 바로 이름 붙이려 한다. 안타깝게도 마음의 문제는 의식 위에 튀어 오른 증상만 떼려잡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증상은 여러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적 현상일 뿐이고, 지금의 상태를 알려주는 지표에 불과하다. 내 몸이 내게 보내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이 증상을 잘 받아들이고 여기에 맞춰서 나의 마음을 재조정하거나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특히나 불안과 우울의 역치가 낮은 경향이 있다. 비정상적 증상이라 여기게 되는 것은 마음 안의 정상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기 때문이다. 10점 만점을 맞아야 정상이고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잘못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6점 이상의 과녁에 꽂으면 괜찮게 했다고 여기는 사람과 불안을 느끼는 사람 사이의 인식은 그 온도차가 클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완벽을 지향하며 정상의 범위를 좁게 정의하고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은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고, 환경이 조금만 변해도 바로 영향을 받는다.

p211 내 마음의 그릇을 키우자는 생각은 언뜻 이상적인 해결책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실현 가능하지 않은 바람이다. 그보다는 나라는 한정된 그릇의 크기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그 컵의 쓰임새를 잘 찾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우리가 삶을 잘 경영해가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실상은 그저 내가 내 그릇을 잘 운용하지 못한 탓인데 자칫 내 존재 자체를 속 좁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려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p243 개인이 강해질 수 있는 정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제 나 한 사람의 생존 능력을 극대화시키고 자아를 완벽하게 발달시키겠다는 욕망이 의미 없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나 하나 살아남는다고, 더 강해져서 옆 사람을 누른다고, 영속하는 행복은 오지 않는다. 완벽할 필요 없음을, 이길 필요 없음을, 욕망의 적정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생존에 위협이 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 그다음 나의 결핍, 부족함, 모자람을 인정하면서 공감의 문을 열어야 한다. 내 결핍을 인식해야 타인의 결핍에 대해서도 역시 그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공감과 연대의 필요성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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