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책]레베카 - 대프니 듀 모리에




p56 기억을 병 속에 담아두는 발명품이 나온다면 좋겠어요. 향기를 담아두는 향수병처럼 말이에요. 그러면 기억은 색이 바라지도, 희미해지지도 않겠지요. 언제든 원하면 병마개를 열고 기억을 생생한 현실로 만드는 거예요.
-생생한 기억과 희미한 추억 중 무엇이 더 좋은가?
미화되는 추억들이 있을것인데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기억이 존재할까?

p61 당신은 내 과거를 지워주고 있어요.

p69 호텔 방이나 가구 딸린 셋집에서 내 것 아닌 옷장이나 서랍장을 활짝 열고 물건을 다 끄집어내는 일상적인 과정 속에서도 나는 슬픔과 상실감을 느낀다. 거기서 우리가 살았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 동안이라 해도 그 공간은 우리 것이었다. 단 이틀 밤을 보낸 곳에도 우리는 자신의 일부를 남겨두게 된다. 물질적인 것이 하나도 없다 해도, 화장대의 머리핀 하나, 빈 아스피린 통 하나, 베개 밑의 손수건 한 장 남지 않았다 해도 우리 삶의 한순간, 생각과 기분의 일부 같은 무형적인 것은 남게 마련이다.
그 공간은 우리의 안식처가 되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 말하고 사랑했다. 모두가 어제까지의 일이다. 오늘 우리는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우리는 미세한 변화를 거쳐 다른 존재가 된다. 두 번 다시 그때와 똑같을 수는 없다.

p70 나는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와 그가 테이블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또다시 나이 먹고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없는 운명 속으로 또 한 걸음 내딛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서로에게 미소를 짓고 점심 메뉴를 고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나는 오 분 전에 화장실에 들어갔던 내가 더이상 없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때의 나는 그 시간 속에 남았다. 나는 조금 더 나이 먹고 성숙한 다른 여자이다.

p116 돌아가신 드 윈터 부인께서 살아 계실 때에는 서쪽의 방을 사용하셨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방,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큰 침실이 바로 드 윈터 부인의 방이었습니다.

p127 개들은 이 집의 규칙을 잘 알고 있었다. 서재 벽난로는 오후가 되어야 불을 피운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오랜 습관에 따라 이 방으로 온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사람의 흔적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는 모습, 제대로 잊혀지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건 새로운 사람에게 어떤모습으로 인식되고 느껴지게 만드는 걸까

p149 나는 차분하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차분하다는 것은 조용하고 편안하다는 뜻이겠지. 무릎 위에 뜨개질감을 놓고 고운 이마를 드러낸 사람이 연상되었다. 불안해하지도, 의혹에 괴로워하지도 않는 사람, 나처럼 공포에 질리거나 걸핏하면 손톱을 물어뜯거나 어디로 가야 할 지 방향을 모르고 헤매는 일 따위는 없는 사람 말이다.
-꼭 차분한게 좋은성격일까??

p174 난 그쪽 해변으로 가고 싶지 않았소. 피비린내가  남아 있는 그곳, 그 빌어먹을 집에는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아요. 나와 똑같은 기억이 있다면 당신도 그곳에 가고 싶지 않을 거요. 거기에 대해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싫어할 거요.
-한사람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치유해줄수 있는 방법은?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있어야 상처가 완전히 아물수 있는 걸까?

p206 그런데도 늘 머릿속에, 꿈속에 레베카가 찾아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나 스스로가 맨덜리의 손님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레베카가 다니던 곳을 걷고 쉬던 곳에 몸을 누이는 손님. 안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손님. 말 한 마디 한 마디, 물건 하나하나가 끊임없이 내게 그 사실을 상기시켰다.

p304 조금 전과 같은 모습이 되는 게 싫소. 뭔가 꿍꿍이가 있는 모습 말이오.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 얼굴에는 특별한 표정이 있었소. 지금도 그 표정이 있지. 그게 무엇인지 명확히 꼬집어 말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그건 내가 당신과 결혼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해요. 방금 당신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동안에는 그 표정이 사라졌소. 뭔가에 밀려난 거요.

p305 세상에는 당신이 몰랐으면 싶은 종류의 일이 있소. 장에 감추고 잠가버리는 편이 좋은 거지. 아까 말한 뭔가는 바로 그런 종류요.

p324 댄버스 부인이었다. 목적을 달성했다는 듯 당당한 얼굴이었다. 영원히 잊지 못할 것처럼 몸서리쳐지는 표정, 기뻐하는 악마의 표정이었다. 부인은 그렇게 서서 내게 미소 지었다.

p351 설마 그가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빈 저택의 공허함이 괴로운 나머지 그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까지 온 거야.

p368 드 윈터 씨가 고통을 받는다면 그건 고통을 받을 만해서 그런 겁니다. 열 달도 지나지 않아 당신처럼 어린 여자와 결혼한 대가로요. 그렇지 않은가요? 전 그의 얼굴을, 그의 눈을 보았지요. 드 윈터 씨는 스스로 지옥을 만든 겁니다? 누고 탓도 할 수 없지요. 드 윈터 씨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지켜본다는 것을, 밤마다 찾아와 근처를 맴돈다는 것을

p412 하지만 그때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감이 있었소. 그 여자의 눈빛에는 무언가가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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