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책] 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서재




p16 인연은 기적이 아니라 노력의 산물

p26 마음
홀씨처럼 둥둥 떠다니다
예기치 못한 곳에 떨어져 피어나는 것.
누군가 물을 주면
이윽고 꽃이 되고 나무가 되어
그렇게 뿌리내려 가는 것.

p32 이름이란 과연, 그것을 부르는 사람, 즉 타인에 의해서 그 가치가 완성되는 것이더군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 이름을 애정 어리게 불러 주었을 때, 무려 삼십여 년간이나 탐탁지 않아 했던 이름을 비로소 나 스스로도 좋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름이 불려질 때 약간은 기분 좋은 쾌감을 느낍니다.
세상이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필요로 하기 때문이겠죠.

p42 친밀감
좋아하는 것보단
싫어하는 게 비슷할 때
더욱 강하게 드는 것.

p50 인생은 단순해요. 우리 머릿속이 복잡할 뿐이지.

p84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일.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세계가 넓길 바란다. 내가 들여다 볼 곳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가끔은 세계가 전혀 없는 사람도 있더라.

그러니 상대의 입장에서 내가 품은 세계는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도 한 번쯤 생각을 해봐야 한다.

p92 너는 너라서 그런 표정을 짓고 그런 말을 하지.
나는 나라서 이런 행동을 하고 이런 생각을 해.
우리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인데
왜 네 기준을 함부로 남에게 적용하는 거니.

p97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모여 영원이 된다.
하여 순간은 작지만 빛나는 영원의 조각들.
그 아름다운 조각들을 너와 함께 새기려는 게 그리 큰 욕심일까.

p108 내가 작업을 하지 않을 때 우리가 만났더라면. 하지만 만남이란 건 원래 어떤식으로든 어긋남을 동반하기 마련 아닌가. 언제 인연이 내가 맞이 할 준비가 되었을 때 찾아온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나는 언제나 내가 좀 더 성숙했을 때,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보다 안정되어 있을 때, 좀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아무튼 내가 조금은 더 잘나가고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일 때 누군가를 만나길 바랐지만 나는 결코 그런 사람이 되어본 적 없었고, 여전히 이렇게 상대를 앞에 두고 또 아쉬워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난 언제까지 상대의 완벽함을 통해 내 결핍을 보상받으려는 노력을 되풀이해야 할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나라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불완전한 존재일 것임을 알고, 그렇게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한 상태에서 누구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 모든 모자람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사랑이 아닐까?

p114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던 어느 날.
우산을 쓰고도 몸이 반쯤 젖어
짜증 섞인 마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오르는데
이제 막 내려서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와하하
비를 맞으며 즐거워한다.
그래
즐거운 사람들은 뭘 해도 즐거운 법이지.
사실은 비가 성가셨던 게 아니라
내 마음이 흐린 탓은 아니었을까.

p126 글쎄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따로 있을까? 내 경험에 의하면 가치란 건 사랑을 함으로써 만들어지더라. 하기 전에 고려된다면 그것은 조건이 될 뿐.
웃을 일이 많아서 웃는 게 아니라
웃을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 더 많이 웃게 되는 것처럼
가치란 건 원래부터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라는 얘기다.
이 넓은 세상에 너와 나, 둘만의 이야기에서는 더더욱.
원래부터 소중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게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 주고
다른 사람은 해주지 못하는 이해를 해줌으로써
오직 내게만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
가치란, 사랑이란 그런 게 아닐까.

p149 나 자신을 가꾸는 일이 소중한 이유는 그 일을 함으로써 나와 내 삶이 아직 결론나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믿고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는게 앞으로 가는 건지는 몰라도, 맞는 길로 가고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느낌. 그런 느낌을 가질 수만 있다면 하다못해 살이라도 몇 킬로 빼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게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 해도, 그런 작은 변화의 여지라도 있어 내 남은 생이, 내 몸과 마음이 이대로 정해져 버리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나는 노력할 거다. 언제까지고 결정되지 않을 삶을 위하여.

p172 연애를 할 때
정말 좋은 상대는
같이 있을 때 좋은 사람이 아니라
서로 떨어져 있을 때
나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에요.
함께 있을 때보다
떨어져 있을 때 하는 행동을 보면
그가 나를 얼마나 배려하는지
이 관계에 얼마나 성의를 보이는지
알 수 있지요.

p197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을 때
끔찍하단 기분이 드는 게 아니라
마음이 편안하고 당연한 듯 여겨진다면
그게 바로 진짜 평생 해도 되는 일이 아닐까.

p224 보자. 사랑하니까 이해하게 되는 것인가, 이해를 주고받다 보니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인가.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건 정말 중요한 게 아니다. 단지 사랑에 있어서 이해라는 게 그만큼 중요하단 것.
우리는 당시 막 사랑을 나누기 시작하던 참이었는데, 그때부터 헤어지던 날까지 우리가 주고받았던 것은 결국 서로에게 자신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끝없는 과정들의 연속 외에 다른 게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은 열렬하였으나, 어리고 서툴렀던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서로에게 자신에 대한 이해만을 구하다 결국엔 서로 또 다른, 더 새롭고 더 깊은 이해를 찾아 떠나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 우리가 상대를 이해하는 연습이 조금만 더 잘 되어 있는 상태에서 만났더라면. 조금만 더 성숙했을 때 서로를 알았더라면.

사랑과 이해는 어째서 한 몸이 아니던가.
헤어지고 나서야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일은 왜 그렇게 많았던가.
내 목숨보다도 더 사랑한다던 너를 이해하는 일만은 어째서 그토록 어려웠던가.

가끔은 사랑보다 이해가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가끔이 아니라 자주.

p233 무조건적인 믿음과 사랑을 퍼붓고 싶은 상대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나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어. 단지 니가 좋기 때문이라는 말 외엔 다른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는데.

p237 인간은 결국엔 혼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혼자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고 봤을 때
책의 가장 위대하고도 현실적인 효용성은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람들과 있을 때 못지않게
때로는 그보다 더욱 풍요로운 순간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쉽게 말해,
바로 이런 순간에
책을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p257 어렵게 산 옷 두 벌을
오늘 백화점에 가서 환불받았다.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샀는데
과연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지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
도무지 확신이 들지 않아
며칠을 고민하다가 그리하였다.
매장에 들러 환불을 요구하자
한 곳에서는 두말없이 처리를 해주었고
한 곳에서는 다소 불친절한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품 안에 있던 물건을 돌려주고 나자
비로소 그 옷이 내게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가
선명해지더라.
한 옷은 그러고 나서 다시 생각이 나지 않았고
한 옷은 내내 눈에 밟혔다.
어떤 게 정말 내가 원하고 필요한 것인지
떠나보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옷이야 또 가서 사오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

p260 인생은 반전이고 앞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까. 싸우고 토라져서 집으로 가버린 다음 날 이렇게 이틀을 연속해서 만나고 처음으로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p282 누군가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때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과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의 상처에 집중하는 사람 중
나는 어느 쪽일까.
어느 쪽이어야만 할까.

p288 어렵게 얻은 마음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기에
너를 헝클어 놨다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누구도 아프게 하지 않고 살아가리라 결심했지만
상처란 건
받는 것도 주는 것도 내 의지로 되는 것은 아니더라

p291 의미
예를 들어 고양이를 기르는 남친의 집에 갔다가
옷에 묻혀온 털을 자신의 집과 차 등지에서 발견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연인이 기르는 동물의 부속물이
내 사적인 공간으로 이동했음을 뜻할 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서로의 삶과 생활이 겹쳐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하여
어느 날 누군가를 만나게 되어
그의 지극히 개인적인 물건이
내 집 내 방 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가령 그가 집에 가방을 두고 갔다든가)
새삼스레 낯선 느낌과 함께
묘한 애틋함이 들기도 하는데
그것은 당연하게도
누군가에게 애착을 갖게 되면
그가 쓰는 물건까지도
남다른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 아닌 다른 존재에게 평범 이상의 각별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건
평소 무심하고 무의미했던 수많은 것들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조차- 특별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유한하기에, 드문 일이기에 더더욱.

p300 우리는 서로를 가지려고 만나는 게 아니라
단지 좋아하고 그리워하기 때문에 만나요.
그러니 누구도
누구의 것이 될 필요는 없는 거죠.

하여
나는 끝내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되지는 못할 테지만
그렇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마세요.
그건
내가 당신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이치와도
같은 거니까요.

아, 너를 네 자리에 그대로 놔두는 일이
바로 너를 갖는 길이라는 걸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p340 행복해서 삶이 소중한 게 아니라
삶이 소중한 것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것.

p345 내게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혼자서 조용히 자신만의 화단을 가꾸는 일.

천천히 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나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들이 앞서 간다고도 생각지 않구요.

오늘도 감사히 보내시길.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흔한 선물은 아닙니다.

p346 나는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을 하려는 게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꿈이나 목표, 하고 싶은 일 같은 것 없이도 지난 사십년간 충분히 잘 살아왔다. 그리고 그런 건 찾고 싶다고 찾아지는 것도 아니요, 찾아진다 해도 언젠간 시들해질 수 있으며, 또다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여전히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거나, 누구나 잘하는 일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을 뿐. 그때는 그때대로, 지금은 지금대로.
관련해서 또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과연 사람은 이른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되면 그렇지 못할 때보다 정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한 날들을 보내게 될까. 살면서 간절히 원하던 어떤 것들을 갖거나 이루게 되었을 때, 그 행복감이란 건 늘 아주 잠시뿐이었다. 결국, 매일 받는 잔칫상이 계속 좋을 리가 없기에 살아 있는 한 감당해야 하는 것은 별 표정 없는 일상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바라던 것을 찾았다고 해서 내 일상이 개벽을 하듯 변한 것은 아니란 얘기다. 사실 거의 변한 게 없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서 힘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고, 쓰고 싶어 썼다고 남들이 무조건 봐주는 것도 아닐 테니까. 다만,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던 어떤 갈증 하나가 조금 희미해졌다고 할까. 단지 그걸 위해 그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을 했냐고 묻는다면 세상 모든 일이 마찬가지라고 답하겠다. 기타리스트가 악기를 고를 때, 어느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면 아주 미세한 소리의 차이로 가격과 레벨에 큰 격차가 생긴다. 단지 아주 조금 더 좋은 소리를 위해 몇 백, 몇 천 만원을 더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옷도 그렇지 않나. 잘 만들어진 명품 직퉁과 진품의 차이는 어째서 전문가들밖엔 감별해내지 못할까. 그 차이가 미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미세한 차이 때문에 사람들은 큰돈을 지불하는 것이고.

p348 뭐해요?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잘 가
언제 들어도 슬픈 말

p364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걸 알았다. 먼 곳까지 조문을 하러 온 친구의 일견 당연해 보이는 행동을 그가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기에, 세상이 얼마나 감사해야 할 것투성이인가를 새삼 깨달은 것이다.

p365 인연은 우연이 아닌 성의와 표현의 산물이니까

p370? 나의 인생관은 삶은 한 번뿐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오직 한 번 뿐이라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바로 그 유한성 때문에 나는 이 한 번뿐인 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다. 만약 내게 인생이 한 천년쯤 되거나 여러 개였다면 아마 이렇게 열심히 살지도, 하루가 소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다음 생이 있다고 믿기도 하는가 본데 만약 다음 생이나 전생이라는 게 있다 해도 지금의 이 자아로 태어나는 것이 아닌 한, 내가 기억도 못하는 전생, 누리지도 못하는 다음 생은 있다 한들 내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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