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책] 붉은 수수밭 - 모옌




p6 소설의 이야기는 영화가 자기 방식으로 다시 서술할 수 있지만, 소설의 언어는 영화나 기타의 예술이 다시 서술할 수가 없다

p41 그의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그 붉은 불꽃은 때론 강하게 때론 약하게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고 있었다.

p85 나는 천 리 밖의 인연이 한 줄로 꿰어지고 한평생의 정분을 맺게 되는 건 모두 하늘과 땅이 도와서 그렇게 되는 것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p110 본래 모든 기다림에는 반드시 결과가 있게 마련이며 그 결과가 나타날 때는 아주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온다는 것을.

p168 사방에 굴러다니던 차빙... 무수하게 땅에 떨어진 붉은 수수들... 영웅처럼 쓰러진 무수히 많은 붉은 수수


p289 이 짐승 같은 놈, 네놈같이 우라질 놈들도 눈물을 흘릴 줄 아냐? 네 놈이 제 마누라랑 제 자식 중한 줄은 알면서 남의 마누라와 남의 자식은 죽이려고 해? 네놈이 그 요강 단지 같은 눈을 꾹 눌러서 지린 물을 짜내면 내가 네놈을 못 죽일 것 같으냐?

p301 가오미 둥베이 지방은 한 번도 폐허가 된 적이 없는 그런 곳이 아니며, 가오미 둥베이 지방 사람들의 영혼 속에 쌓인 무너진 벽돌과 깨진 기와들은 한 번도 말끔히 정리된 적이 없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것을.

p337 이 렁가 놈아, 일본 놈 다 때려 부수고 나서 우리 둘이 결판을 내자!

p362 인육을 먹는 데 익숙해진 개들은 일찌감치 진짜 야수가 되어 있었다.

p371 복수심이 그의 나약함을 이겼다. 그는 일본 놈을 증오했고, 렁 지대를 증오했고 또 팔로군의 자오가오 대대를 증오했다. 자오가오 대대는 이쪽에서 총을 스무 자루도 더 넘게 빼앗아 가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들이 일본군과 전투를 했다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렁 지대와 충돌했다는 이야기만 들렸다.

p387 일본 군도가 아버지의 머리 위에서 차가운 빛을 번쩍이며 무수히 내리쳐졌지만 수숫대가 매번 그것을 막아주었다. 할아버지의 두피는 총알에 긁혀 깊은 홈이 파였지만 빽빽하게 늘어선 수수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p472 태풍은 그리 여러 날 불지 않고, 가족은 그리 오랫동안 싸우지 않는다.

p477 조국의 산하가 쪼개지면 필부도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일본 놈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모두 과거의 원한 같은 건 던져버려야 합니다. 개인적인 원한은 일본을 물리치고 난 뒤에 다시 논하시죠.

p484 나뉜 것이 오래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친 게 오래되면 반드시 나뉜다는 겁니다. 어떤 당이 한 나라를 관리한다고 하면서 서로 이런저런 소리들을 해대며, 남편은 찬 걸 싫어하고 마누라는 더운 걸 싫어하는 꼴이 되면 결국은 이리저리 흩어져 산산조각이 나는 거죠.

p491 그 기간에 할아버지는 도리어 롄얼의 약점 속에서 할머니의 장점을 발견했다.

p509 그러나 할아버지는 해가 차면 기울고 달이 차면 기울고 그릇이 차면 쏟아지고 흥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쇠하게 된다는 평범한 변증법의 이치를 잊고 있었다.

p516 난 우리 때문에 우는 거야. 우린 원래 서로 이웃 마을에 살던 고향 사람들이잖아. 시도 대도 없이 서로 부딪치고 다들 친척 아니면 친구지간이었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건지!
이 짐승 같은 놈들아! 네놈들이 재주가 있으면 일본 놈을 치고! 족제비드을 칠 것이지! 뭐 하러 우리 철판회를 치는 거냐! 이 매국노 같은 놈들아! 

p524 네놈들이 중국 놈 자지가 찔러서 나온 놈들이면 우릴 풀어주고, 일본 놈 자지가 찔러서 나온 놈들이면 우릴 쏴 죽여라!
렁 지대 대원 두 명이 총 무더기에서 주워온 칼 두 자루로 포로들을 묶고 있던 끈을 절단했다.
80여 명의 사람이 미친 듯이 총 더미 쪽으로 달려가고, 수류탄 더미 쪽으로 달려갔고, 그 다음에 그들은 팔이 마비되었는지, 배 속이 텅텅 비었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와 하고 함성을 지르며 일본 놈들이 쏘아대는 납 총알을 향해 달려갔다.

p554 선생님 영감나리 저를 좀 봐주세요 선생님 집에도 처자식이 없지 않으실 텐데 누이동생도 있으실...

p575 그때는 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받았고, 의료 시설도 형편없었기 때문에 영아 사망률이 높았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다 강골이었다. 난 가끔씩 인종의 퇴화가, 갈수록 더 부유하고 편리해지는 생활 조건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한다. 부유하고 편안한 생활은 인류가 분투노력하는 목표이고 또한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목표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또한 불가피하게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심각한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인간은 바로 자신의 노력으로 인간의 우수한 품성을 소멸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p595 그는 애써 변명했다. 일본 놈이 총검으로 나를 몰아서 그렇게 한 거라고, 내가 일본 놈들을 데려오지 ㅇ낳았어도 그놈들은 움집을 다 찾아내서 그 속에다 폭탄을 던졌을 거라고. 그러자 폭탄에 맞아 죽은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있다가 물러갔다. 그는 다 망가져 온전한 데가 없는 그들의 몸을 보면서, 자기는 부끄러울 게 없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도 온몸이 마치 언 강 속에 잠긴 것처럼 안에서부터 바깥까지 차가워졌다.

p599 우린 공산당이오. 굶어 죽더라도 고개를 숙일 순 없고, 얼어 죽더라도 허리를 굽힐 순 없소. 누구라도 적에게 투항하고 절개를 버리라고 하면, 난 그자와 총칼로 맞서 싸울 거요!

p604 하지만 이런 상황의 유사함이 결코 그로 하여금 복수와 한풀이의 쾌감을 느기게 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날카로운 칼로 후비는 듯한 예리한 고통이 그의 심장 위에 깊은 상처를 그어놓는 것 같았다.

p615 넌 영웅을 숭상하지만 개자식은 ㅁ이ㅝ하지. 하지만 과연 '가장 영웅적인 사내면서 또한 가장 개자식'이 아닌 이가 어디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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